작성일 : 14-01-06 13:27
[56호] 편집위 생각? - 콜롬버스여, 계란 값 물어내라
 글쓴이 : 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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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여, 계란 값 물어내라

요사이 큰아이가 진로고민이 많다. 그러나 고민은 많이 하는데 길이 보이진 않는다.
아침 밥상에 계란후라이가 올라왔다. 콜럼버스의 달걀! 발상의 전환!
어쩌면 아이의 고민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콜럼버스의 달걀’을 아는지 물었다. ‘모른다’고 씩씩하니 답한다. ‘콜럼버스가 계란의 밑동을 깨고 세운 일화’를 이야기 하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옆에서 아내가 거든다.

며칠 뒤 책을 보다 ‘콜럼버스여, 달걀 값 물어내라’는 김민웅 교수의 글을 보았다.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의 여운이 있어 앞선 글보다 먼저 펼쳐들었다.

“어떤 기업광고에서 ‘콜럼버스의 달걀’을 소재로 삼아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것을 보았다. 일이란 해놓고 보면 별것 아닌 듯싶지만 언제나 ‘최초의 발상전환’이 어렵다는, 매우 자존심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해 문제성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달걀의 겉모양에는 둥지에서 구르더라도 그 둥지의 반경을 벗어나지 않도록 고안된 생명의 섭리가 담겨있다. 원형이었다면 굴렀을 때 둥지에서 벗어나 버릴 수 있으며, 각이 졌다면 어미 새가 품기 곤란했을 것이다. 타원형은 그래서 생명을 지키는 원초적 방어선이다. 따라서 달걀을 세워보겠다는 것은 그런 생명의 원칙과 맞서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은 상식을 깬 발상전환의 모델이 아니라, 생명을 깨서라도 자신의 구상을 달성하겠다는 탐욕적. 반생명적 발상으로 확대된다.
실로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은 카리브 해안과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금과 은을 얻기 위해 무수한 생명을 거리낌 없이 살육했다. 결국 콜럼버스의 달걀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뒷받침하는 사고의 원형이 된다.
오늘날 필요한 발상의 전환은 달걀을 어떻게 하면 세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갇혀 그 답을 모색하는 일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달걀의 모양새가 왜 타원형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일에서 시작된다. 원래의 타원형을 지키는 새로운 노력이 ‘오늘의 상식’을 깨지 못할 때 생명의 신음 소리도 도처에서 계속 들리게 될 것이다.”

아~~!
‘오늘의 상식’이란 이름으로 콜럼버스의 달걀이야기를 꺼낸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