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1-07 10:55
[118호] 인권포커스 - 앉을 권리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5,429  

앉을 권리

김영옥


안녕하세요.
저는 마트에서 10년 동안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자입니다
방광염, 하지정맥, 족저근막염,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어깨 근골격계, 팔꿈치 염증, 테니스 엘보, 어깨부터 무릎까지 멍들 때까지 마트에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가장 흔하고도 가장 친근한 병명들입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제대로 쉴 의자도 없이 그렇게 10년을 마트에서 일 해왔습니다. 쉬는 날엔 편한 휴식보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이 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이었습니다.

6년 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가입 후 전국 마트 매장 창고에 하나 둘 의자가 놓인 후에는 마트 노동자들은 일을 하다가도 언제든 의자에서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자가 계산대 또는 창고에 놓인 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편안히 앉을 수 있어서 좋다.’
의자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를 겁니다.
이제는 계산대 고객 수, 관리자 눈치, 창고 상품량에 상관없이 우리의 의지에 의해 앉을 수 있습니다
휴식시간이면 자유롭게 앉을 수 있다는 것,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의 소소한 고마움입니다.
이 당연한 앉을 권리를 우리는 이제 조금씩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6년 전에만 해도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가 지급되어야 하는 것을 모른 채 지난 10년 또는 15년이 넘는 시간을 회사를 위한 일만을 했습니다.
10년 전에는 근무시간 중 너무나 힘이 들어 동료들끼리 차디찬 창고 안 시멘트 바닥에 개봉된 상품 폐박스에 앉아 잠시나마 고단함을 내려놓은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대기업 마트 몸집 불리기에 자기 몸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4,50대 노동자들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 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식사시간 후 나머지 30분을 창고 안 의자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습니다. 비록 문도 없고 여름에는 춥고 겨울에는 춥지만 의자가 있어 우리는 더없이 행복하게 앉을 수 있습니다.

외국계 회사는 휴게실에 편안한 의자와 무한제 공의 음료 간식 제공하고 있습니다.
400여 명 넘는 직원이 사용하는 우리의 휴게실도 지금보다 조금 더 넓어지고 일하는 현장 가까운 곳에 더 많은 간이의자가 놓여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춰 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의자가 있어도 눈치가 보여서 앉지도 못하는 의자가 아닌,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모든 서비스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하게 바래봅니다.


※ 김영옥 님은 마트노조울산지부 부본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