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05 13:23
[101호] 시선 하나 - 군함도를 다녀와서...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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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를 다녀와서...

김태현


1. 가이드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일반인들이 잘 가 지 않는 데를 가기도 한다. 얼마 전에 나가사키(長崎) ‘군함도’ 라는 작은 섬에 갔다 왔다. 사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가지 않는 곳이다. 군함도에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소회를 두서없이 적어본다.

2. 정식 명칭은 하시마(端島)라고 하는데 생긴 모양이 군함 같다고 하여 군함도 라고도 한다. 19세기 초에 석탄이 발견되었고 석탄을 대량으로 채굴할 때에 군함도 인구가 5,300명이나 되어 초중학교, 병원, 영화관 등의 기반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석탄은 전전은 물론이고 전후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을 지탱해 온 에너지였지만 석유로 대체되면서 군함도 탄광도 1974년에 폐광되었고 무인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일본은 명치산업유산과 관련 있는 야마구치 규슈 지역의 산업지를 세계문화유산 등록으로 추진한다. 당초 한국은 반대했지만 세계문화유산 등록 결정문에 강제노역을 인정하는 문구를 삽입하는 조건으로 결국에는... 그런데 군함도 상륙 현장에서는 그런 표현을 보지 못했다.

3. 군함도로 가는 배안에서 영상을 보며 이런 저런 설명을 듣는다. 대부분의 내용은 50-60년대 섬 생활에 관한 것이다. 상륙하여 보면 폐광이후 약 40년간 무인도였기 때문에 폐허로 남아 있는 건물만이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 준다. 그 모습을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같이 간 다수의 일본인들도 감동한다. 군함도가 고도경제성장을 이루는데 기여한 것만을 보여 주었다. 아니 그 모습만을 보도록 만들어져 있다. 결국 역사의 일부분만을 본 것이다.

4. 그러나 군함도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역사가 있다. 태평양전쟁으로 전쟁에 참전한 일본인들을 대신하여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서 조선의 젊은이들을 강제노동 시켰다는 사실이다. 늘상 갱도가 붕괴될 위험이 있고 온도 30도가 넘는 탄광에 채굴을 위해 동원된 것이다. 약 500명의 조선인들이 20년간... 그리고 122명이 죽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었다면 그 노역을 본인의 의사에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기에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발적으로 한단 말인가?

5. 군함도를 다녀오면서 역사는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군함도에는 통한과 고통의 역사가 있었다. 분명 존재하고 꼭 기록하여 알려야 할 역사는 보여 주지도 않았고 언급도 없었다.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국가를 빼앗긴 이들의 인권이 말살된 역사도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

2년 전에 울산인권운동연대가 인권기행을 일본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실시하였다. 그 때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을 비롯한 의미 있는 곳을 방문했다. 군함도는 그 평화자료관에서 보았던 역사의 실제 현장인 것이다. 소설『군함도』도 출간되어 있고 영화『군함도』도 곧 개봉된다고 한다.

앞뒤 맞지 않게 몇 자 적었습니다. 다들 생업에 바쁘겠지만 인권운동연대의 활동 또 나아가서 인권과 관련된 사안들에 관심도 가져주시고 정보제공도 부탁드립니다.

※ 김태현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