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 「4등」 관람후기
홍영준
4등, “괜찮아 괜찮단다~ 애썼다. 사랑한다.”
대회에 나가면 늘 4등만 하는 준호는 그 결과와 관계없이 웃고 떠들며 그저 수영을 좋아하고 즐기는 우리 주위의 흔한 아이다. 반면 학업으로 대학 진학이 어렵다고 일찌감치 판단한 준호 엄마는 그런 준호가 불만이고 어떻게든 대회에서 수상한 실적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시키고자 매달린다.
급기야 교회 장로를 통해 왕년의 실력 있는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인 광수를 코치로 소개받고 한껏 기대에 부푼다. 그러나 광수는 준호를 가르치기 보다는 PC방에서 게임으로 하루하루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다. 어느 날 준호의 수영 재능을 감지한 광수는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반교육적이었다. 광수와 함께 출전한 대회에서 거의 1등인 2등을 한 날 준호 가족은 완전 잔치 분위기다. 적어도 동생이 “정말 맞고 하니까 잘 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 날 4등 했던 거야 형”이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준호 아빠의 체벌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광수는 승부 근성이 없다며 체벌을 통한 수영 강습 방식을 버리지 않는다. 결국 준호는 “맞으며 하기 싫다. 때리지 말라”며 수영장을 도망쳐 빠져 나오며 수영 포기를 선언한다.
그렇지만, 준호에게 수영은 자유이자 일종의 해방구와 같은 공간이었다. 준호는 방안을 감싸는 낯선 빛을 보고 불현 듯 수영장을 향한다. “햇살을 받으면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에너지가 생긴다.”고 말한 준호는 레일을 가로지르며 빛과 함께 놀듯이 수영을 한다. 그리고는 다시 수영을 가르쳐달라며 코치를 찾아가고 광수는 “혼자 해봐라.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다.”라며 자신의 물안경을 선물로 준다.
그렇게 준호는 코치도 엄마도 없이 광수가 준 물안경도 두고 홀로 대회에 출전해 1등을 하고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준호가 맞는 것 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섭다”며 일등만 추구하는 우리 사회상을 담은 엄마, 코치의 선수 시절 당한 폭력에는 눈감고 “내 아들은 때리지 말아 달라”며 촌지를 전달하는 이중적인 아빠의 모습에 화가 나기보다 차라리 애잔하고 안쓰러웠다. 일등이란 아이를 가르치는 코치의 폭력을 묵인하면서까지 얻어야만 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수영을 포기한 아이를 대하는 냉정한 엄마의 모습은 또 다른 폭력의 한 단면이었다. 이들에게 아이는 꿈을 키워주고 꿈에 다가가게 하는 조력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아이들을 꿰맞추며 자신들의 꿈을 대신 이루어 줄 대상으로서의 아이만 존재할 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들이 자라온 학창시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무수한 폭력이 있어왔던가? “지금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 선생”이라는 코치의 말에서는 그 어떤 인권 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일상적인 폭력으로 아이가 얻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 맞은 거”라는 그릇된 가치의 수용이다. 그리고 폭력을 수용한 아이는 허락 없이 물안경을 사용한 동생에게 코치가 자기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폭력을 가한다. 폭력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이 대물림되는 소름끼치는 순간이다.
타인에 대한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을뿐더러 그리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에는 정치, 경제, 문화의 제도와 규범 안에서 부지불식간에 행해지는 갖가지 폭력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가 인권 존중의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시급히 극복해야만 할 과제들이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보장되고 존중받아야할 권리인 인권은 활자 속에 박제되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 구석구석에 구체적이고도 실재적으로 살아 움직이며 구현되어야만 참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4등도 괜찮아 괜찮단다~~ 애썼고 사랑한다.
※ 홍영준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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