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7-30 08:43
[127호] 인권포커스 - 도대체 누가 이주여성을 '피해자 이미지' 로 머물게 하는가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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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이주여성을
'피해자 이미지' 로 머물게 하는가

강혜숙



지난 7월 초, 한 국제결혼가정의 가정폭력범죄 사건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진 이후 각 언론에서는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언론 등을 통해서 알려진 사건만 보더라도 21명의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의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이러한 죽음의 행렬 속에서 이주여성운동 현장에서는 기자회견과 추모제를 통해 이주여성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자 했다. 당시 '살 권리'가 아니라 '죽지 않을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주여성들의 두려움, 분노, 공포, 간절함이 구호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0년 7월 20일 이주여성들의 고 0000 추모기자회견 "우리도 그 베트남여성일 수 있다"
2011년 6월 2일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제, 추모 행진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2012년 7월18일 추모제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 이주여성 안전망을 구축하라"
2014년 12월 30일 추모제 "우리는 살해당하러 오지 않았다"
2015년 12월16일 기자회견, 추모제 "살해당한 이주여성과 아이를 위한 추모제"

이러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채로 또 하나의 사건이 SNS로 알려져 파장이 큰 가운데, 흥미로운 공방이 한 언론의 지면을 통해 벌어지고 있다. 전북대학교 설동훈 교수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의 표본설계와 설문지 구성과 결과 분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에 대해 이주민운동가인 석원정 소장이 반박하고 설교수가 다시 재반박하고 있다.

설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을 요구하는 한편, "조사결과가 ‘피해자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해 다문화가족 구성원들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로 여기는 고정관념을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언론은 오류 정보를 유포하여 다문화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다문화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확산을 우려해서 통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듯 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의 원인은 무엇인가? : 한국사회가 이주여성에 대한 남편의 통제권을 보장해준 제도 때문이다.

결혼이주자 가족만을 ‘다문화가족’의 범주로 설정한 ?다문화가족지원법?에 근거해 국제결혼가정이 주 대상인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었다. 2010년까지 결혼이민자 사회통합정책의 주무부처였던 보건복지가족부가 2008년 발표한 <다문화가족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강화대책>안은 다문화가족의 순기능을 “특히 농촌지역 출산율을 증가시킴으로써,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억제기제로 작용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출발부터 결혼이주여성을 저출산고령화 해결의 수단으로 여긴 가운데, 결혼이주여성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협상하는 독립적인 시민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단적으로 귀화신청은 면접시 남편의 동행을 요구하고, 남편과 시집식구들의 진술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주 여성들은
남편으로부터 극심한 폭력이나 성적, 경제적 착취를 당하는 경우라 해도 국적 취득을 위해서는 혼인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남편이 고의로 국적 신청을 미루는 경우 국적법이 요구하는 체류기간을 충족시켰다 해도 남편의 협조 없이는 귀화신청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2018년 11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혼인 상태 여부에 상관없이 체류권을 안정화 하라고 권고했다.

이처럼 한국은 이주여성에 대한 남편의 통제권을 보장할 뿐 아니라 나아가 조장함으로써 국제결혼에 내재된 젠더 불평등을 극대화시키고 있고 그 결과는 다양한 방식의 가정폭력으로 나타난다.

누가 ‘피해자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해왔는가? : 부정의한 성차별적인 사법기관과 제도,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남성 중심적 사회이다.

'성추행과 인사보복' 안태근 전 검사장은 2심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극단원 상습성추행’ 이윤택은 징역 7년형이 확정되었다. 안태근과 이윤택의 피해자를 우리는 '피해자의 이미지'로 보는가? 피해의 고통을 이겨내고 사회변화를 이끈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보는가?
그동안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피해자'로 머물게 하는 것은 부정의한 성차별적인 사법기관과 제도,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남성 중심적 사회였던 것이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도 오히려 '피해자 이미지'까지 걱정해야하는 범죄가 여성폭력범죄 피해자 외에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차별을 차별이라고 이야기하고 피해를 피해라고 이야기하는 인간의 가장 최소한의 저항조차 제거시키려는 악랄함이다.
여성폭력 범죄에 대해서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피해자에게는 일상을'이라는 지극히 상식이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치유중이거나 치유된 '사람'일 뿐이다.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차별 속에서 차별을 인식하는 자체가 이미 강한 '주체'의 발현이다. 전북 익산시장의 인종차별과 7월의 가정폭력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이주여성 '주체'들이 한국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주자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보편적 존엄성을 갖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깊은 연결감은 이주여성들을 희생시키려고만 하는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한국의 잘못된 구조와 제도가 눈에 보인다.


※ 강혜숙 님은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