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20 14:57
[52호] 회원글 - 세상속의 불편한 현실 ‘자살’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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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불편한 현실 ‘자살’

최성호 l 회원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보면 누군가의 자살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등장하고 있다. 가수나 연기자 같은 연예인을 비롯하여 기업인, 아나운서, 교수, 운동선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대통령도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사회에서 자살이 중요한 이슈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여기저기에서 자살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자살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결심하고, 시도하고, 결국에는 목숨을 끊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왜 그러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거나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단정 지어버리고 만다.

2011년에 발표된 통계청의 「201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2010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수는 총 15,566명에 달한다. 이는 1일 평균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약 29분에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자살은 이보다 많은 수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같은 급속한 자살률 증가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상황이며 이러한 증가추세가 지속된다면 자살문제는 ‘재앙’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자살방지 정책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참담한 실패로 평가할 수 있다. 정부가 자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크게 증가한 1998년 경제위기 이후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자살 대책이 수립된 것은 2004년이 되어서이다. 정부는 2004년 12월에 ‘자살예방 5개 년 종합대책’ 의 기본 계획을 수립하였고 2005년 9월 세부 추진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자 하였다. 보건복지부의 2004년 종합대책은 자살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국가가 주도하여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할 것이며 민간이나 정신보건센터 등에서 수행해온 자살예방 사업을 범정부차원의 활동으로 확대하였던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대책은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여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04년 종합대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기본적인 정책 범위를 개인중심의 정신보건사업으로 한정하여 사회경제적, 범정부적 지원책 마련이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살 원인은 정신질환 이외에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위한 지원체계 마련이 절실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범정부적인 거버넌스, 법과 제도 등의 확립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체계적인 정책수행의 기반 마련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진단과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정책의 중요성에 비해 국민적 합의 및 사회적 공론화에 한계가 있었으며 제한된 예산으로 인해 단계적인 정책 접근이 미흡했던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초연구 부족으로 인해 실증적인 근거에 기반한 정책수행의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살위험 관리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기관이 명시되지 않아 사업의 진행 과정을 적절히 점검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한계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08년 12월 ‘제2차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발표하였는데, 제2차 종합대책은 제1차 사업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토대로 개선책을 마련하였다는 데에 의미를 둘 수 있다. 특히 정책 범위를 개인중심의 정신보건사업으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경제적 지원 방안이나 사회 환경 개선 등의 방안이 대책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자살 위험자를 능동적으로 발견하여 개입하려는 시도 및 자살 유가족에 대한 대책이 포함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종합대책 역시 시급성과 실효성을 체계적으로 고민하여 제출된 것이 아니라, 정신보건사업과 취약 계층 지원사업을 우선순위 없이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실제적인 성과를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제2차 종합대책에서도 제시된 사업의 진행

상황을 평가하고 각 실행단위의 활동을 조정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아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다. 자살예방에 대한 종합대책이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마련된다 하더라도 자살위험관리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기관이 없다면 예산의 확보, 인적자원의 확충 등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원활동은 물론이고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을 관리하는 조정기능을 수행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종합대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의 제정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종합대책에서는 ‘자살예방법’ 의 제정을 통해 법적 기반을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구체화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1년 3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이 제정되어 2012년부터 시행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의 제정 이후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자살예방 관련 조례를 제정하여 지자체별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는 점도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정부에서 내놓은 자살 방지 대책이 지금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자살이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공의 문제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살에 대해 더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심의 첫걸음은 자살에 대해 더 잘 아는 것보다 정확히는 자살자들의 행위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자살이라는 현실이 우리에게는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사람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도록 한 것에는 일정부분 공공의 책임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필요하다. 나아가 자살의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고 우리의 인식과 문화가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계속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