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20 14:51
[52호] 회원글 - 심장이 아픈 사람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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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아픈 사람들

송혜림 l 회원


무슨 질병, 치료 이야기가 아니고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언어를 아낀답니다. 당신을 보면 심장이 아픕니다” 라고 한다네요. 권현형 시인이 '붕대를 감은 금요일 저녁'에서 소개한 말이지요.

또 이영주 시인의 '나의 인사'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I see you 당신이 보여요, 란 말은 아프리카식 안부인사랍니다... ”
이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설명이 멋있지요. "그러니까 줄루족의 안부 인사는 sawubona 사우보나 라고 한다지요...'나는 당신을 봅니다' 라는 뜻이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보다가 이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라고 말할 때는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역사를 본다는 뜻이더군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아마도 내가 왜 태어났는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죽을 지 다 알 수도 있겠네요. 나는 당신을 봅니다, 그건 당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압니다, 그런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고픈 인사군요."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마음산책. 2010. 284쪽).

그러니 나는 당신을 봅니다 라는 말은 곧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뜻이기도 하겠네요. 심장이 아플 정도의 사랑, 존재 이유와 역사를 알아보는 사랑은 열정에서 더 나아가 책임, 인내, 헌신, 근심, 측은지심 같은 깊음을 담고있을 듯 싶고요. 이 무슨 사랑 이야기냐고요? 봄이 오고 있으니까요. 올 겨울 유난히 추웠던 만큼 봄이 더 기다려지지요. 그 봄이 오면 괜히 창 밖이 수선스럽고 궁금해지쟎아요. 코 끝에 바람 불고 마음이 설레쟎아요. 내게도 무슨 일이 생겼으면 하쟎아요. 그러니, 이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좋은 때지요.
보통 사랑이라 하면, 남녀, 가족, 친구 혹은 사제 등의 관계에서의 정서를 떠올리는데요,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려고요. 사실 나와 가까운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의 사랑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리요..’라고 성경에도 써 있지요. 이런 관계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나를 사랑하지 않는 혹은 지금 당장은 내게 유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더 나아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대상에 대한 사랑은 어떨까요. 조금 더 확장된, 덜 이기적인 그래서 더 힘든 사랑 혹은 이타주의적 사랑이라고나 할까요.

최근 슈테판 클라인이 쓴 ‘이타주의가 지배한다’(웅진지식하우스)를 읽었는데요, 원제가 Der Sinn des Gebens, 즉 ‘준다는 것의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미래는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데, 다른 사람을 돕는 일, 협력,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 등이 이타적 행동이라는 것이고요. 여기에서 협력은 주고 받는 관계에서 힘을 합하는 것도 있지만, 되돌려받지 않아도 주는 것, 결국 상호호혜성에서 더 나아가 계층을 초월한 협력, 그래서 連帶(solidarity)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고요. 사실은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원제 ‘준다는 것의 의미’에 더 맞닿아 있기도 하겠지요. 이 세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이 연대의 힘, 즉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주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이해도 가능하지요. 물론 이런 이타심 이면에 명예, 자존감, 자기만족 등이 있기도 하겠지만, 어쨌거나 이웃과 약자 혹은 평등과 평화, 인권, 정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나 싶네요.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요, 사는 것이 힘들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니 걱정이 되어서요. 태어날 때부터 경쟁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협력도 연대도 모른 채 나날을 전쟁처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가엾어서요. 그리 치열하게 살아도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니 우울해지쟎아요. 갈수록 빈부차가 심해진다니 큰 일이지요. 환경오염도 심각하고요. 그러니 근심에 찬 마음으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서로 찾아주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리워서 그러지요.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방법이 있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라는 것이 철학을 이야기하는 강신주의 말이고요. 내 마음을 따라가며 독특한 자신만의 길과 만나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새 해 첫 날 어떤 이는 기부금을 더 많이 내겠다는 다짐을 메일로 보내왔고요. 열 다섯 살 제 아이는 사춘기 폭풍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소위 명품, 유명브랜드를 찾아다녀, 우리 세대처럼 낭비, 과소비하며 살면 지구가 세 개라도 모자란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사시사철 바지 두 개로 버틴다 다짐했고, 벌써 7개월째 잘 지키고 있네요. 최근 이 곳 미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총기사건, 특히 아이들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 앞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실망하던 한 미국친구는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가발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자기 머리카락을 주기적으로 잘라 어느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는군요.
인권을 박탈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일상의 행복을 저당 잡힌 아동과 청소년들, 장래가 불안한 노인들 혹은 비인간화와 이기주의, 자연파괴 때문에 근심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기, 그렇게 다가오는 봄 심장이 아플 정도의 사랑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요, 세상 참 좋아지겠지요. 그러고 보니, 심장이 아픈 사람들은 희망을 보는 사람들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