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9-03 16:26
[116호] 인권포커스 - 법학자가 본 사법농단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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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가 본 사법농단

오문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비행을 일컫는 말이다. 아직은 이 일련의 행태들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아 이를 단정적으로 문제라고 하기는 시기상조이다. 다만, 최근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만 보아도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올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누구 말마따나 사법부 존재 자체가 뿌리 채 흔들릴 일이다.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헛소문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믿을 곳이 법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법원도 믿지 못하게 된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민주’를 표방하는 것은 역사를 수놓았던 많은 정치체제 가운데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쓸 만한 게 민주정체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도 이를 깨우쳐준다. 그리고 민주정체가 작동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게 법치주의이다. 통치자는 적어도 법에 근거해서 통치하고 피치자(국민)는 그 법(그리고 그 법에 대한 판단)을 존중하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관계가 깨져버리면 각자 자기 편한 데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쪽으로 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회의 붕괴로 이어진다.

작금의 사태가 어떻게 정리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 정도 검토가 필요하다. 하나는 조직 차원의 접근이다. (조직 내) 민주주의의 문제가 그러하다.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부의 수장이라는 이유로 전권을 휘두르는데 이는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문제가 크다. 그 권한의 축소와 함께 그 권한의 행사를 감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사법부 자체의 감시기구와 함께 국민의 감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법원의 행정업무는 행정공무원이 맡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문외한인 판사가 법원행정을 맡아보는 게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하다. 아니면 업무를 협업체제에 맡기는 방안도 있겠다.

또 하나는 판사 개개인의 문제이다. 이는 물론 조직의 성격과 구조에서 연유하는 일이기는 한데 지방법원의 평판사에서 시작해서 부장판사를 거쳐 고등법원 부장판사, 그리고 지방법원장과 고등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출세의 행로는 문제가 있다. 승진을 위해서는 인사고과를 잘 받아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윗분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고, 이런 먹이사슬이랄지 하는 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최근 재미있게 본 드라마로 <미스 함무라비>라는 작품이 있는데 판사의 세계를 재미있게 그려놓았다.(실은 좀 허황하기는 했다)
대안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전들 대안이 있나요. 판사는 모두 평판사만으로 구성하고 법원장은 판사 가운데 선거를 통해 뽑든지 주민투표로 뽑든지 하는 방식을 구상해보면 어떨까. 하나 더 얘기하자면 우리 판사님들이 애국심을 좀 덜 발휘했으면 좋겠다.

노동판례 하나를 소개해 본다. 누가 노동자인지를 밝힌 잘 알려진 판결이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계약이 민법상의 고용계약이든 또는 도급계약이든 그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나, 여기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하여 정하여지고 취업규칙·복무규정·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 과정에 있어서도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 사용자에 의하여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지 여부, 근로자 스스로가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업무의 대체성 유무, 비품·원자재·작업도구 등의 소유관계, 보수가 근로 자체의 대상적(對償的) 성격을 갖고 있는지 여부와……양 당사자의 경제·사회적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96. 4. 26. 선고 95다20348 판결)

여기서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는 부분을 좋게 읽으면 어느 단면만 보지 않고 제반 정황을 잘 살펴 판단하겠다는 결단이라고 해석된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자면 사실관계가 너무 복잡하니 결론은 내 맘대로 내리겠다고 읽힌다. 그리고 ‘내 맘대로’는 국가를 생각하는 애국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대법원에 가서 판판이 깨진 숱한 사건들이 대법관들로서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한 충정, 애국심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내렸으리라 짐작한다. 이제는 덜 애국하는 판사가 필요하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아니고 판사는 법리만으로 말한다. 애국심은 다른 데에 써도 좋겠다.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