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9-28 17:46
[105호] 인권포커스 - 소년법 개정 논의에 부쳐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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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 개정 논의에 부쳐

최정학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마도 개정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 광장에서 ‘소년법 폐지’를 청원한 사람의 수가 25만 명을 넘어섰다고도 한다. 이러한 국민들의 여론을 반영하여 일부 국회의원들은 18세 미만의 소년들에게도 일반 형사처벌 조항의 적용제외를 규정한 소년법을 개정하는 것은 물론 미성년자에게도 사형과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여론과는 달리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갑작스런 법률 개정에 우려를 표명한다. 우선 가장 먼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러한 형벌의 강화가 소년범죄에 대해 예방 효과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부산의 폭행 사건이 충격적일 정도로 잔인하고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이런 폭행 사건이 과연 이전에는 없었는가? 또 형벌을 다소 강화한다고 해서 이런 사건이 앞으로는 없어질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소년범죄 문제는 단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몇 해 전에는 몇몇 청소년들이 온라인에서 만난 대학생을 집단으로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사건도 있었거니와, 아마 이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잔인한 사건들도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년범죄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강력범죄에 대해 형벌을 상향조정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10년대 초반 몇몇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률들의 처벌 상한이 크게 높아졌음은 물론 전자감시나 화학적 거세와 같은 새로운 처분이 도입 또는 확대 적용되었고, 일반 형법의 유기징역형의 상한도 30년으로 (가중될 경우에는 50년 까지) 대폭 강화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강력범죄가 줄어들었다는 증거는 별로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흉악범죄의 발생률은 2010년 이래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만 발견된다.
한편 이와는 달리 범죄학이나 법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론은 범죄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처벌의 강도나 엄격성’이 아니라 ‘처벌의 확실성’이라는 것이다.

흔히 일벌백계, 그러니까 특정한 한 사건에 대해 강력한 높은 벌을 부과하면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경고효과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강한 형벌의 충격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게 마련이다. 강한 형벌이 일반화되면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즉 발각되지 않으리라는) 무모한 범죄자가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반대로 확실한 처벌, 즉 발생한 모든 사건이 처벌된다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면, 분명히 기대되는 형벌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 이외에는 범죄행위로 나아가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화된 형벌의 효과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물어야 할 것은 이런 잔인한 소년범죄가 왜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이것이 소년사법이 범죄행위를 저지른 소년들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해왔기 때문인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한 대로, 소년범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많은 범죄들은 훨씬 더 깊고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소년범죄의 경우에 한정해서 살펴보자면, 끊임없이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학교생활이나 낮은 학업성취도 혹은 성적의 비교가 주는 지나친 스트레스와 같은 과도한 긴장들은 많은 소년들에게 우울이나 불안, 심지어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초래하고 이를 (범죄를 포함하여!) 어떤 식으로든 발산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에 더해 광범위하게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적 문화는 어떠한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직장에서 또 학교에서,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폭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오랜 관행(?)을 가지고 있다. 대중 매체는 섬뜩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하고 이를 정의의 이름으로 미화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긴장을 표출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하는 소년들의 일탈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 않는가. 물론 모든 소년범죄의 탓을 학교나 교육체제, 사회로 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만큼 당장의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분명한 사실을 외면한 채, 처벌의 강화와 같은 즉자적인 반응만을 꾀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릇된 방향의 대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소년법의 개정이 검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최근 소년범죄의 경향, (변화가 있다면) 그 원인, 그리고 제안된 개정이 미칠 효과 등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가 주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자극적인 한 사건 이후 감정적인 여론을 배경으로 처벌의 강화만을 운위하는 것은 대중의 요구에 즉자적, 정치적으로 반응하는 형벌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



※ 글을 보내주신 최정학 님은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