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3-31 15:28
[99호] 인권포커스 - 탄핵 단상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7,701  
탄핵 단상

김승석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대부분의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담담하게 선고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판결문으로써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최초로 탄핵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야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부하에 의해 살해당함으로써 임기를 채우지는 못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법 절차를 거쳐 파면되어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분노가 탐욕을 몰아내다.

국회에서 시작하여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되기까지 탄핵의 원동력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촛불집회에 반영된 민심이다. 촛불로 상징되는 분노의 표출은 우리나라에서 집회의 자유가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나이와 성별과 직업을 가리지 않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교육의 장임을 입증하였고, 외국 언론에서도 극찬하듯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감 없이 뽐 낼 수 있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촛불집회에서 폭력을 수반하지 않고 가족과 연인을 동반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분노가 표출되었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수십만, 또는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십 수차례에 걸쳐 야간 집회와 행진을 하고도 불상사 한 건 없이 청소까지 말끔하게 마무리하는 광경은 세계 역사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다른 한편 촛불집회의 원인이 된 국정농단은 극히 일부의 기득권층에 의해 자행되었지만, 이 또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국의 보수당은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전근대적 사고에 빠져 공권력의 사유화를 당연시 여겨 왔다. 그래서 ‘근혜 마마’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듯하다.
이와 더불어 권력의 주변에서 기생하는 엘리트들의 행태는 지식인의 도덕적 불감증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법비(法匪-언론에서서는 법꾸라지라고 야유하지만)들은 ‘애국’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내걸고 법을 무기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마적떼와 비슷한 행태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거의 양아치 수준임을 보여주었고, 대학의 총장과 학장 등 보직교수들 역시 대학에서 있을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일말의 양심도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함과 비민주성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탐욕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벌거벗은 모습은 시민들을 격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한 촛불의 분노가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움직였고 탐욕을 몰아냈지만 이러한 탐욕은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을 해야 하나?

박근혜의 파면은 유신체제의 종말이라고 보기도 하고, 1987년 체제의 종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진보와 보수, 심지어는 좌파와 우파로 분류하여 명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아니며,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더 더욱 아니다.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일 뿐이다.
정치와 이념이 과잉된 사회에서 상식은 설 자리가 없다. 21세기에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블랙리스트를 작동시키면서 재벌의 전근대성을 옹호한다면 상식이 작동하는 사회가 될 수 없다. 촛불이 없었다면 탄핵은 성공할 수 없었다고 상정한다면 촛불집회가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전한 시민들의 분노가 정당을 움직이고 정치를 추동해야만 새로운 탐욕의 재생산을 막을 수 있다.

일부 기득권층의 탐욕이 무기력하게 인정되었던 시간이 오래 지속되는 동안 적폐는 켜켜이 쌓이고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하여 ‘헬조선’을 만들어 왔다. 탄핵 이후 선거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박정희 사후에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고, 1987년 6월 항쟁 후에는 노태우가 정권을 가로챘던 경험을 반추해 보면 이번 선거는 대단히 중요하다. 촛불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의 적폐와 모순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보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누가 시대정신을 잘 반영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의 문제가 먼저 토론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을 대변하는 촛불의 분노를 집약적으로 표출하는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바로 4년 전에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 김승석 님은 울산대학교 교수이며 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