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1-31 11:54
[97호] 시선 하나 - 미루는 습관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7,364  

미루는 습관

김규란


“이거, 다 갈아야 하겠는데요?” 1,000원짜리 매운 새우깡과 850원짜리 뿌셔뿌셔를 사 들고 오는 길이었다. 골목길 맞은편에서 거대한 연두색 마을버스가 돌진했다. 살짝 옆으로 붙었다. ‘찌직’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개의치 않고 액셀을 밟았다. 마을버스가 지나간 후, 지금 드는 불길한 직감은 기우일 뿐이라 생각하며 확인 차 내렸다. 웬걸, 골목길에 주차된 검정 K5가 범퍼가 오그라들었다.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렸다. 내 차는 보기 좋게 옆문부터 뒷문까지 선명한 한 줄이 새겨졌다. 사실 그 차, 뽑은 지 2주 된 신차다. 조수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애꿎은 과자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인간은 상황이 악화할수록 ‘탓’을 한다. ‘탓’의 대상은 다양하다. 인간일 수도, 돈일 수도, 심지어는 발등 앞의 짱돌일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랬다. 남자친구 몰래 헌팅을 했을 땐, “네가 덜 매력적이라 그래”라며 반박했고, 입사 필기시험에서 떨어졌을 땐, “심사위원이 보는 눈이 없네.”라며 십어댔다. 사실 내가 놀고 싶었고, 내가 실력이 모자랐을 뿐인데 말이다. 인간의 본성은 꽤 옹졸하다.

암울한 상황을 마주하기 힘든 건 ‘막연한 미루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어린 날의 우리는 무책임 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일이 잘못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사방팔방 해결책을 찾곤 했다. 어느새 부턴가, 일이 그릇되면 우선 담배를 한 대 문다. 욕을 한다. 한마디를 던진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까먹는다. 정확히는 회피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하반신이 활활 타올랐을 때쯤 ‘그 일’이 회상된다. 급하게 하반신부터 수습한다. 물론, 발등은 타버려 없어진 지 오래다.

감히 “나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를 가져라.”고 전언하고 싶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며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가 있다고 본다. 추상적인 ‘희망, 노력, 준비’도 믿질 않는다. 희망은 판도라가 연 상자에 악들과 같이 있었으며, 노력은 ‘노오―력’으로 희화화 된 지 오래다. 준비야말로 연습처럼 뒤통수를 딱 치고 튄다.

예측 가능성이 배제된 사회에서 추상적인 북돋움은 선민의식의 파생일 뿐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길은 멀쩡한 이정표를 탓하게 한다. 중립적 사고가 답이며, 그 중립의 중앙에는 ‘나 자신’이 서 있다.

‘남 탓’과 ‘내 탓’의 중간은 ‘미루는 습관 버리기’쯤 될 것 같다. 회피도, 자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3주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되돌려 준다든지, 식사를 하고 3분 내로 양치를 한다든지. 소소하게 나 자신의 자잘한 습관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 다른 새해가 밝아 온다. 17년 1월 1일의 해를 보며 다짐했던 것들이 쿰쿰한 서랍 속에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음력 새해도 새해다. 차 사고 당일, 이불 속에 처박혀 우울을 타고 있던 내게 아버지가 따끈한 프라이드치킨을 사다 줬다. “이제 잘하면 돼지.” 그리고 나는 미뤄뒀던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였다.

※ 김규란 님은 2015년 울산인권운동연대 인턴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울산저널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