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10 14:52
[48호] 인권포커스 - 지자체, 인권을 위한 첫 걸음을 떼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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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l 울산인권운동연대 사무국장

인권기본조례의 제정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의 조례제정 권고에 78%에 이르는 지방자치단체가 연내 제정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시기 각종 토론회에서 제기되어왔던 ‘조례의 실효성 논란’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어, 인권기본조례운동에 비판적 시각을 명쾌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인권기본조례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로 삼았던 것은 ‘인권위원회’의 구성과 ‘인권기본계획’의 수립과 집행이었다.
예컨대 조례의 제정방식과 내용 등 제기되었던 많은 문제를 뒤로하고 결론적으로 보면 인권을 기준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밝히고 이를 통한 지역주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증진하기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실행이 담보되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권기본계획은 인권기본조례를 통해 구현하고자하는 목적을 수행하는 구체적 지침이 되기에 이에 대한 기본계획의 수립은 그래서 더더욱 지방자치단체의 의중을 가늠하는 주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소위 인권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몇몇 지방자치단체조차 변죽만 울릴 뿐 정착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지침을 제시할 ‘인권기본계획’의 수립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울산광역시 동구에서 지난 7월 27일 ‘인권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비록 짧은 연구기간으로 인해 세밀한 실태조사와 풍부한 자료검토를 통한 계획의 수립을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번 결과물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인권기본계획’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 ‘인권기본계획’의 수립과정에서 지켜야할 원칙과 이를 통해 담아내야할 내용에 대한 의견들이 간헐적으로 제출된바가 있으나, 정작 그러한 논의를 모아내어 결과를 내놓은 사례가 없었다. 어떠한 목차와 내용을 담아내야하는 것인지 수차례의 자문과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아냈지만 여전히 부족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권기본계획’이라는 성과를 내놓은 것만으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예컨대 이번 성과물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비판이 뒤따를 것이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인권기본계획’이 마련될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권기본계획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서 담아야할 인권사무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기초자치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인권사무가 무엇인지 밝혀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우리는 이번 ‘인권기본계획’에서는 여백을 담고자 노력했다. 이런 원칙, 저런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의견이 난무하였다. 아쉬운 내용을 원 없이 담으려고 노력했다면 아마도 이번 ‘인권기본계획’은 진정 ‘계획’으로서 마무리되었을 게다. 그러나 우리는 실천을 담보로 한 계획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여백을 담고자 노력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과연 어느 정도 일 것인가? 어떤 이는 거두절미하고 한 가지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주문하길 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디 그리할 수 있었겠는가? 나름의 고민과 토론을 거쳐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실천과제와 업무를 제시해보았다. 이 또한 기준을 마련하는 시작일 뿐이지만...

마지막으로 ‘인권기본계획’의 준비과정에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다. ‘계획’을 수립하기위한 사전조사에서부터 인권기본계획의 수립원칙을 세우고 이를 무던하게 밀고 나갔다. 지역단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일일이 단체들을 찾아가서 의견을 청취하는 ‘찾아가는 간담회’를 수차례 진행하였으며, 공개워크숍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인권기본계획’에 반영코자 동분서주하였다.
인권실태조사를 위한 사전조사와 당사자 간담회를 통한 현실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며, 어느 연구보다 비중 있게 다루려했다. ‘인권기본계획’이라는 것이 갖는 고유의 역할과 위치를 명확히 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여전히 크다. 많은 부분이 추상적인 계획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시인한다. 이를테면, 계획을 위한 계획, 즉 인권도시를 향한 첫걸음으로서 기본계획에 불과하다.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분야별 구체적 실천계획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다. 다만, 이러한 계획이 미래의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 주민참여,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및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결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인권기본계획’ 이후가 더욱 주목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