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10 14:47
[48호] 회원글 - 느리게 산다는 것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9,271  

송혜림 l 회원


미국 Oregon 주에서 안식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인디언식의 지명, 상호명 등이 자주 눈에 띄는데요, 그 옛날 이 땅에 터 잡고 살던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를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일 듯싶군요.
그러면서 언젠가 들었던 인디언의 우화를 떠올리게 되었는데요, 부지런히 일하는 한국인들의 삶이 그러하듯, 저 역시 나날이 전쟁 치르듯 업무에 쫓기며 살다가, 이곳에서 상대적으로 덜 바빠져서 일까요. 옆의 인디언 우화는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보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자주자주 내 삶을 뒤돌아보며 살자, 뭐 그런 정도의 교훈을 주고 있지요. 그리 보면 요즘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느리게 삶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 느리게 산다는 것이 게으르고 뒤처지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소평가될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죠. 그동안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오지 않았나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치열함은 능률과 생산성, 편리함 그리고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래서 우리는 과연 전보다 더 행복할까요. 개발의 논리로 자연과 환경을 무분별하게 파괴한 결과가 이제 우리 아이들 세대에 무섭게 영향을 미칠 텐데, 과연 우리가 가만있어도 되는 걸까요. 그런데도 계속 더 빨리 달려야 할까요.

다시 인디언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 보면, 다코타족 인디언들의 인사말 “미타구예 오야신”이 소개되어 있지요.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라 하니 자연과 나를 분리시키지 않는 통합적인 삶의 철학과 지향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이 곳 미국을 구성하는 여러 州의 이름에도 인디언의 정신이 남아있다고 하지요 (<배우근기자의 인디언 이야기>. 2012/04/26 16:09. - http://blog.naver.com/lovejuhwa/140157950100)

몇 개 소개해 드릴께요.

오레곤 - 아름다운 물
오클라호마 - 붉은 얼굴의 사람들
캔자스 - 친구들
미주리 - 큰 배가 있는 마을
미시간 - 넓은 호수
미시시피 - 물들의 아버지
아이오와 - 아름다운 땅
다코타 - 모두는 연결된 사람들
나이아가라 - 천둥처럼 구르는 물
켄터키 - 내일의 땅
알라바마 - 여기서 쉰다
세네카 - 서 있는 바위

결국 느리게 산다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인 것 같군요.
파괴보다 돌봄에 대한 관심, 과소비에 대한 경계, 필요하지 않는데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절제, 적게 갖고도 자족할 수 있는 지혜, 일과 삶의 균형, 약자에 대한 배려, 그래서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불평하지 않는 것, 이런 삶의 양식에서 느리게 사는 법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닐지요.
이제부터 내 영혼이 잘 쫓아오고 있는지 가끔 뒤돌아보아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