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를 반성한다
- 어느 노인요양원 의사의 양심고백 -
나카무라 진이치 저, 강신원 옮김 / 사이몬북스 2025 / 정리 : 배미란
< 들어가며 >
저는 노인요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이단아인 셈입니다. 저는 잘나가는 병원에서 원장과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그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스스로 지금의 노인요양원에 일개 평의사로 몸담기 시작한 것은 제 나이 60세 때의 일입니다. (중간 생략) 저는 벌써 70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와 함께 일하겠다는 의사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노인요양원은 ‘병원이 아니고 복지시설’이라는 인식이 틀어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후배들에게 ‘여기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묻기라도 하면 ‘거기까지 전락하고 싶지는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절합니다. 의사들 사이에서 ‘밑바닥’으로 통하는 곳이 노인요양원이라면, 저는 그야말로 병원 산업의 꼭대기와 밑바닥을 모두 경험한 셈입니다.
병원 산업이 발달하기 전(1950년 이전)에 죽음이라는 절차는 원래 조용하고 평온한 것이었습니다. 생을 마무리하는 당사자에게 본인의 삶이 비로소 완성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의미 있는 순간을 병원이 낚아채면서 더할 수 없이 비참한 것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이란 원래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병원이 개입된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노인은 어딘가 안 좋은 게 정상’이라고 저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중간 생략) 옛날 노인들은 ‘몸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매스컴과 제약업계와 병원에서 끝없이 만들어내는 ‘건강에 대한 환상’으로 모든 노인이 나이 탓을 인정하지 않고, 노화를 ‘질병’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노년기를 편안하게 보내려면 약물과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 노화에 순응하며 질병과 동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노인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역할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죽는 방식’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죽는 방식이란 사는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입니다.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도 행복한 법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내가 사는 방식, 이웃이나 가족과 관계를 맺는 방식, 이 모든 것이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 장면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당연히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당장 의사나 약물이나 병원을 찾으며 법석을 떠는 사람에게 자연사란 허황된 소망에 불과합니다.
단순히 ‘하루 더 사는 삶’이라는 차원을 넘어 더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라면 이제부터라도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우면 삶도 두려워지기 때문입니다.
<1장> 당신은 병원을 믿습니까?
“언제부터인가(약 1850년대부터) 죽을 때가 되면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병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이것이 바로 수백수천만 번 반복되는 현대 의료의 비극입니다. 혈관에 화학약품을 투여하고, 목구멍에 관을 삽입하고, 살에 수술로 꿰맨 자국을 가진 상태에서 죽음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것이 당신의 삶을 단축시키고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이제 더 이상 치료법이 소용없다.’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선택은 항상 의사의 선택과 동일합니다. 병원 시스템과 의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실험실의 쥐’가 된다는 말입니다.”
<2장> 몸은 답을 알고 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호흡 상태도 나빠집니다. 호흡이란 공기 중의 산소를 받아들이고 몸 안에 생긴 탄산가스를 방출하는 작업입니다. 만일 이 작업이 원활하지 않다면 산소결핍 상태가 되는데 탄산가스가 배출되지 않고 몸 안에 쌓인다는 뜻입니다. 산소결핍 상태에서는 뇌 속에 모르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유도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조르기 기술에 걸렸을 때 하나같이 기분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모르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탄산가스에는 마취 작용이 있는데 이 또한 죽음의 고통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 자연사란 아무런 고통도 없이 그저 이승에서 저승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과정일 뿐이며, 수명을 다하여 노쇠사 하는 노인에게 주어진 마지막 특권입니다.”
<3장> 내버려 두어도 암은 아프지 않다.
“암은 때릴수록 흉포해진다. : 일본 국립암센터는 ‘20년 후에도 암 사망자 수는 줄지 않는다.’라고 벌써 고백한 바 있습니다. ‘암은 질병이 아니라 노화현상’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암세포가 쌓이므로 암도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 암과 싸우기 보다는 노화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암과 싸우는 순간 삶이 엉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두려우면 삶도 두려워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 만일 통증이 발생한다면 완화 케어(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는 치료)를 받는 것은 추천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암과의 공생 방식입니다.”
<4장> 죽음이 두려우면 삶도 두려워진다.
“‘죽음이 두려우면 삶도 두려워진다.’ 이것이 우리 모임의 구호입니다. 이 책의 첫머리에 썼다시피 저는 16년이 넘게 ‘자기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 인생, 마지막까지 정말 멋지고 훌륭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절대불변의 길’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4월에 발족한 모임입니다.”
<5장> 건강에 대한 환상이 질병을 부른다.
“태어나는 것은 자기의 의지로 할 수 없지만, 돌아갈 때를 받아들이려면 싫어도 노(老), 병(病), 사(死)와 마주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늙음’에 순응하고, ‘질병’은 함께 하되 ‘죽음’에도 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늙어가는 모습과 죽어가는 모습을 후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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