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10-06 10:50
[189호] 여는 글 - 농업과 농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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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농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
-“노동허가제와 농업노동자, 그리고 농민”-

신강협



얼마 전, 어느 농촌 지역에 인권토론회 자리가 있었다. 토론회 이후 농촌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가벼운 대화가 있었다. 현지 노동 인권을 고민하시는 분이 지역 내에서 이주농업노동자의 이탈을 막고 안정적인 노동 인력을 확보하려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몇 해 전 농촌의 농업인력 문제에 대한 한 방송사의 토론에서 농민활동가 패널이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임금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꽤 진보적인 농민 활동가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분이 최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니 필자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뒤에야 그 농민 활동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농민들이 내는 농가의 소득으로는 고용허가제 하의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농가가 거의 없다. 공공형 계절노동자를 고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숫자는 아주 미미한 정도이다. 실제 농가 소득은 하락한 반면 농업경영비는 상승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농업노동 임금이 15만 원에서 18만 원까지 치솟기도 하였다. 지금은 이주노동자 임금이 많이 내려 안정되기는 했지만, 저임금 상황이 맞는지 떨떠름하다. 어쨌든 인건비의 상승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농민들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2021년 한국법제연구원의 연구보고 21-14-4 “데이터에 기반한 입법평가: 포용적 성장을 위한 입법(IV) - 외국인근로자고용법”이라는 논문을 보면,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근로자의 계약자유의 원칙, 직업의 자유, 평등권,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헌법과 국제규범을 준수해 외국인 근로자의 직장이동의 권리를 부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허가제 형태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편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은 더 적극적으로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의 고용허가제 또는 정부의 할당량 통제 정책은 이주노동자들의 직장이동 권리를 본질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용에 관한 대부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업주의 부당한 지시와 처우를 이주노동자들이 그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 다른 한편, 내국인 노동자 산재 발생률에 비해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발생률이 5-6배 정도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재 진입장벽이 높고, 미등록 노동자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은 더 위험하고 더 차별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농업의 경제적 여건이 그다지 녹록하지 않은 상황 그리고 고용허가제의 정규 이주노동자 고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허가제는 농업분야 이주노동자들의 이탈을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2018년 12월 17일,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권리 선언의 전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모든 인권은 보편적이고, 불가분하며, 상호 관련되어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이라는 점과 동일한 바탕 위에서 그리고 같은 비중으로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함을 재확인하고, 한 범주의 권리를 증진·보호한다고 해서 다른 권리를 증진·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결코 면제 되지 않음을 상기하며…(중략)…노동 보호와 일하는 보람이 있는 인간다운 일자리에 관한 국제노동기구의 광범위한 협약 및 권고사항을 상기하며…(하략)”

자칫 우리는 순간적으로 농민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이 상충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그나마 농민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키는 것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이 농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게 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국제보편인권규범인 농민권리선언은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충돌이 아니라, 모든 당사자, 모든 사람들사이의 이해관계 조정과 권리의 보장은 국가의 책무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어느 한 측의 권리 희생을 통해서 다른 한 측의 권리보장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 회피이며 반인권적 상황이다.
그래서 농민권리선언은 다시 전문에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림살이를 의지하며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토지, 물, 자연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농민에 대한 불평등한 소득구조 개선과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동시적으로 국가의 책무인 셈이다. 국가는 더욱 적극적으로 농업 생산구조에 맞는 노동 인력을 계산하고 적정한 노동인력을 제공할 책무를 가져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더욱 유의미하고 실효적인 정책과 공공형 계절노동자와 같은 제도의 개선과 확대가 필요하다. 더불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소득이 불평등하다면 그에 맞는 사회적 지원제도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업무 환경의 개선은 실질적으로 노동 효율성을 증진시킨다는 노동 연구 결과가 많다. 단순히 많은 노동시간이 많은 생산 효율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저임금이면 농민 또는 고용주에서 이익일 듯하지만, 그러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적절한 임금과 적절하고 평등한 노동환경이 오히려 노동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노동허가제를 고려하고, 더 나아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 협약(1990, 한국 미가입)”을 가입하고 적극 이행하는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적절한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이 오히려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성을 더 증가시켜, 농민들이 평등한 소득을 얻는 데 이바지케 하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이 다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할 책무를 가진다.

※ 신강협 님은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