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9-05 17:55
[188호] 시선 하나 - 초저출생 시대, ‘필리핀 이모’ 더 저렴하게 고용하자?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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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생 시대, ‘필리핀 이모’ 더 저렴하게 고용하자?

이승진


2023년 9월, 윤석열 정부가 고용허가제(E-9) 일부로 ‘외국인 가사 관리사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선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 대책으로 가사 관리사 도입 검토를 국무회의에서 지시했고 같은 달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가사근로자 관련 공개토론회’를 개최해서 청소・간병・육아 등에 외국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국인 종사 인력 감소, 고령화, 저출산 대응, 여성의 경력 단절 방지를 이유로 들었다. 이 시범사업은 2024년 9월부터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이를 위해 8월 6일 100명의 필리핀 여성이 입국했고 앞으로 6개월간 시범사업에 종사하게 된다.

서울시가 2024년 7월 17일부터 8월 6일까지 이용 가정을 모집한 결과 731가정이 신청했고 최종 157가정을 선정했다. 약 5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것이다. 이용 가정 선정에 있어 한부모, 맞벌이, 다자녀, 임신부를 우대했고 자녀 나이(7세 이하), 이용 기간(6개월), 가사 관리사 근로 시간(40시간), 지역적 배분 등을 고려해서 고용노동부, 서울시, 서비스 제공기관이 협의해서 선정했다. 이후 이용계약서 작성, 요금납부 여부 등을 확인해 최종 확정되면 9월 3일부터 외국인 가사 관리사 서비스가 시작된다.

이 사업에 대한 여러 논란 가운데 특히 임금 수준이 쟁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윤 정부는 지속적으로 가사서비스 비용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돌봄 서비스 비용이 통근형은 시간당 1만 5,000원 이상, 입주형은 월 350~450만 원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중국 동포는 월 250~350만 원으로 형성되어 있다.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아이돌봄서비스 시간제 기본 시급은 1만 1,080원, 종합서비스는 시급 1만 4,400원이다. 이번 시범사업에 투입된 가사 관리사는 최저임금(9,860원)을 적용받는다. 여기에 사회보험료를 포함하면 시간당 1만 3,700원을 받게 된다. 주 40시간 근무 시 월 238만 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 가사 관리사에게 최저임금 이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다. 여차하면 윤 정부는 이를 밀어붙일 태세다. 조정훈 국회의원은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가사 관리사 정책 근거 법안을 상정하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해야 외국인 가사 관리사 도입의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외국인 가사노동 인력을 쓸 수 있도록 유학생을 활용하자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들의 인권과 노동권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관련해서 허명 회장(한국여성단체협의회)은 “홍콩・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월급은 40만~70만 원”이라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국내 최저임금을 지급한다면 가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김현철 교수(홍콩과학기술대) 역시 “홍콩은 가사도우미 임금이 1990년대 들어 30~40% 수준으로 줄면서 수요가 늘어났다”며 “한국도 가사도우미 임금이 월 100만 원 정도에 머물러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에 장주영 부연구원(이민정책연구원)은 <월간복지동향>에서 “육아란 고되고 비싸고 부모 일에 방해가 되지만 아무나(심지어 외국인 학생도) 대신할 수 있는 일이니 각자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저렴하게 고용해서 자녀를 키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이 제도가 전달하는 메시지 어디에도 자녀를 낳고 돌보는 기쁨이나 가족의 가치, 아동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돌봄 환경 조성 등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녀를 낳아야 할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 한 이 사업이 저출생 해소 방안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가사 관리사 도입에 있어 최저임금 문제만 주요 쟁점으로 삼는 건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 부연구원은 같은 글에서 “문화 다양성에 대한 포용 인식이 낮은 한국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김유휘 부연구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역시 ‘돌봄서비스의 외국인 종사자에 관한 기초연구’에서 “현재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주민은 중국 동포와 결혼이주여성인데 이들은 한국어로 소통하고 한국 가족문화에 대한 경험과 유사성이 높음에도 이들과 이들을 이용하는 가족, 파견업체에서는 여전히 언어와 가족문화 차이에 따른 문제점이 제기된다”고 언급했다.

장 부연구원은 “정부가 저렴한 외국인 가사 관리사를 고용해서 자녀를 키우라는 기조를 내세우는 것은 자녀 돌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돌봄의 가치를 평가절하해서 자녀 출산 의향을 오히려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재차 강조했다. 반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2만 2000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본인의 노동시간을 유지하면서 기관이나 타인에 의한 양육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보다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도록 노동시간에 대폭 변화를 주는 지원을 선호’하며 이러한 선호는 성, 연령, 혼인상태, 자녀 유무, 학력,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일관된 결과가 나타난다.

장 부연구원은 이를 근거로 “외국인 가사 관리사 정책의 방향성이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려달라는 국민들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자녀를 직접 돌보면서 자녀의 성장을 보는 것이 ‘기쁨’이라는 보상이 되는데 보상 없이 비용만 존재하는 일은 누구도 하기를 원하지 않고 하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모가 자녀를 돌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돌봄의 권리-의무 간 접점을 지원하는 정책이 확립되지 않는 이상 저출생 상황 개선은 다가오지 않을 미래”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런 추세라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요양보호사와 간병사 영역도 외국인력이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이 인간을 대체해 나가는 미래가 예측되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간병사 같은 돌봄 분야 외국인력을 늘리기 위해 2025년부터 준전문인력 취업학교를 운영하기로 했다. 돌봄 인력 구인난을 대비해서 로봇・AI산업 육성을 위한 지속적 투자와 함께 초고령사회 대응 돌봄 로봇 서비스 보급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서울의료원 내 혈액・검체・약체 이송 로봇 도입, 서울어린이병원 내 재활치료 로봇 및 인프라 구축 등 돌봄 로봇 서비스 선도 공간을 조성한다. 이 미래가 우리나라 저출생, 고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 이승진 님은 나은내일연구원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