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28 14:09
[196호] 시선 하나 - 기억과 평화를 잇는 길 _ 제주 4·3 을 다시 보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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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평화를 잇는 길
- 제주 4·3 을 다시 보다 -

김성미


지난 4월 3일, 울산대 학생들과 함께 제주 4·3 의 진실과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를 가졌다. 강연을 진행한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신강협 활동가는 단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마음 한 켠에 깊게 남은 울림은 단순한 역사 지식을 넘어서는 그 이상이었다. 그 울림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3만여 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이다. 이념의 갈등과 냉전 속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했고,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오랜 세월 침묵해야 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4월 3일이라는 ‘날짜’로만 이 비극을 기억한다. 이토록 참혹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여전히 이 사건을 이름 없이 ‘날짜’로만 기억할까?

이번 강연을 통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갖는 힘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은,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름을 붙이지 못한 역사는 회복되지 않은 상처와 같다.

당시 유족들이 만들 수밖에 없었던 헛묘, 즉 시신 없는 무덤은 단지 비석이 놓인 자리가 아니라, 이름조차 부르지 못했던 가족을 위한 기억의 자리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비가 서 있다. 이름은 곧 존재이고, 존재를 기억하는 일은 곧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제주 4·3 을 기억해야 할까? 단순히 과거의 슬픈 사건이기 때문이 아니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과거를 마주하고, 반복을 막는 사회적 장치이며,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정의의 출발점이다. 강연에서 신강협 활동가는 “만약 그때 인간에 대한 존엄과 존중이 있었더라면, 제주 4·3 은 벌어질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물음은 단순한 역사적 반성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종종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로 오해하지만,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가 소극적 평화라면, 정의가 실현되고 상처가 치유되며 인간의 존엄이 회복된 상태가 적극적 평화다. 신강협 활동가는 평화는 그 자체가 아니라 평화로 가는 길 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평화는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함께 실현해가야 할 과정이라는 말에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제주 4・3은 단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다. 매년 4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제주 4・3을 기억하고자 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그러나 단순한 추모로 끝나선 안 된다. 기억하고 말하고, 이름을 부르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평화를 실현해가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민주주의다. 우리 모두 주인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며,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단지 법과 제도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문화와 일상, 대화의 방식까지도 변화시켜야 한다. 이번 강연의 핵심 메시지도 여기에 있었다.

제주 4・3은 오늘 우리의 삶과 공동체가 진정으로 평화로운지 묻는 거울이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선언이다.

우리는 현재, 진정 평화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가?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그 평화를 위해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신강협 활동가의 강연을 통해 다시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 김성미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교육센터 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