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4-30 17:35
[184호] 인권 포커스 - 국가폭력과 제주 4・3의 인권소멸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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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과 제주 4・3의 인권소멸

한강범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전 세계를 죽이는 것이다.


#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결론


3년에 걸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2000.1.12. 제주4・3특별법 공포 및 조사 착수 ~ 2003.10.16. 채택) 결론에 따르면, 제주 4・3의 국가폭력실태는 다음과 같이 명약관화하다.
즉, “제주 4・3사건은, 3・1절 기념 집회(1947.3.1) 현장에서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6명 사망, 8명 부상자 발생을 기점으로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1948.4.3.) 이후 한라산 금족령 해제(1954.9.21)될 때까지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정부 공식확인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 중에서 10세 이하 어린이 814명, 60세 이상 노인 860명, 여성 2,985명 등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진압 토벌 작전으로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사례가 확인됐다.”

국가인정 희생자 14,500여 명 중에서 실상이 이렇다면, 전체 추정 희생자 25,000명 ~ 30,000명 중에는 더욱 심각한 인권탄압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인권유린과 인권탄압이란 개념보다 더욱 심각한 인권소멸 단계란 신조어가 등장할 만하다.
국가공권력 행사와 군인, 경찰의 물리력 행사라는 용어는 국가폭력이란 민얼굴을 위장하려는 화장술에 불과하며, 문학적인 미화법에 불과한 표현이다.

#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1948)과 제노바협정(1949) 위반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 범죄는 UN(국제연합)의 정신과 목적에 위배된다. 문명 세계에서 단죄되어야 할 국제법상 범죄에 해당한다.
“유엔 제노사이드에 대한 국제협약에 따라서 처벌 공소시효가 없다.”
(유엔총회. 1968. 11. 26)의 개념규정과 적용 범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학살(murder)의 개념규정과 적용 범위>
1. 피해자 범위에는 전쟁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무력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2. 전쟁 시, 평화 시에 국가권력에 의해 민주적 재판절차 없이 생명권을 침해하는 폭력, 살해행위.

<집단학살(genocide)의 개념규정과 적용 범위>

1. 특정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살상행위,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주는 행위.
2. 특정 집단 또는 집단의 어린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행위 등. 제주섬에서 토벌대가 저지른 불법행위 즉, 비무장 민간인 살상행위와 고문치사, 성폭력, 방화, 약탈과 연좌제에 의한 감시와 가족 희생과 불이익 등은 6・25한국전쟁 다음으로 엄청난 피해사례와 인권소멸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4・3 당시 한반도의 운명이 미소 냉전시대의 초기 강경정책으로 이념전쟁과 경제전쟁의 실험장이었다. 즉, 유럽판 그리스 내전처럼 아시아판 냉전의 실험장으로 한반도의 제주도가 국제정세의 한복판에서 미소경쟁 냉전시대의 희생양이 된다. 미국군사정부(미군정청) 통치 3년 시기와 직후 이승만 정부의 불법 계엄령 등 초강경 진압 작전, 소위 만주벌판에서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 방식으로 제주도의 엄청난 인권소멸 실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체 추정 희생자 대다수가 진압 토벌대에 의한 희생이며, 소수가 봉기 무장대에 의한 희생이다. 제주 4・3에서 대량학살이든 쌍방간의 보복학살이든 어떠한 형태의 양민학살도 인권소멸이다. 4・3은 가해자와 피해지가 따로 없다고 볼 수 있다. 단 한 명의 무고한 생명에 대한 살상행위, 고문, 비인간적 처우, 생존자와 유족의 트라우마조차도 인권침해이다.

# 인권소멸과 인권 보호의 두 주인공 정용철과 문형순

“하루에 한 명 이상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라고 떠벌이는 서북청년단 출신 삼양 지서장 정용철은, 성폭행 성고문 학살자로 악명이 높았다.
사례 1. 삼양지서에 잡혀 온 마을 사람 중 젊은 여자들을 발가벗기고 고문 도구로 매질부터 시작한다. 누가 보건 말 건 성폭행하고, 옷을 다 벗긴 후 지서 높은 망루로 올려보낸다. 겨울 맹추위와 바람에 노출된 몸으로 벌벌 떨며 새벽까지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날이 밝으면 총살해 버린다.
사례 2. 임신 여성도 남편이 입산자라는 이유로 정주임 앞에 세워졌다. 총부리 난로에 넣어 시뻘겋게 달군 후에 여성을 발로 차서 넘어뜨린다. 옷을 다 벗기고 배가 부른 여성(21세)을 불에 달궈진 총부리로 상상 초월의 성고문을 합니다. 실신 상태의 여자를 지서 옆 밭에 데려가 휘발유 뿌려서 불태워 죽이라고, 경찰보조로 나온 청년단원에게 지시합니다. 휘발유로 불태운 시신을 흙으로 덮었는데, 아직 죽지 않고 흙이 들썩들썩했다.


★ 문형순은, 6.25 한국전쟁 직후 예비 검속자를 색출하여 총살 대상자 명단을 보고하라는 군대의 지휘공문을 “부당하므로 불이행함”으로 맞서서 약 100명 이상의 목숨을 살려낸 성산포 경찰서장이다. 이전에도 모슬포 경찰서장 재직 때도 100명 이상을 자수시켜 훈방한다.

둘은 똑같이 이북 출신이며 경찰 간부였다. 생명을 존중하는 휴머니스트 문형순!
양민학살을 거부하고 희생을 최소화한 문형순은 한국판 쉰들러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량학살 지시를 거부하고 생명을 구해낸 독일의 의인(義人)과 비견될 만하다.

# 제주 4・3 정신과 인권의 소중함

제주 4・3정신은 “탄압이면 항쟁이다. 통일정부 수립하자”에서 시작된 제주공동체 정신이다. 이어서 희생자 명예회복과 국가배상, 제주공동체의 상생 화해 단계를 거쳐서 4・3 진상규명과 역사적 평가 단계를 향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밑바닥에는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는 4・3의 강물이 흘러 흘러 제주 바다로 모이고 있다.

제주인에게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 3가지 상처가 있다.
첫째, 신체 상처 둘째, 감정 상처 셋째, 역사상처가 그것이다.
4・3 생존부상자의 신체 상처는 아직도 치료가 계속되고 있다. 감정 상처가 남아있는 트라우마 감정 장애인이 아직도 살아 있다. 잔혹한 4・3 역사의 현장 충격과 공포에 대한 기억삭제와 상상 억제에 실패한 사람이 겪는 역사상처 후유증은 제주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찾아올 수 있다.
4・3의 슬픔으로 자살한 제주인 통계조사는 아무도 모르고, 희생자 범위에 포함하는 기준도 아직 없다. 76년 전 살아남은 자와 유족들은 물론 4・3 역사를 아는 체험세대, 현세대, 미래세대가 역사적 상처와 충격으로 향후 그 누구라도 심리적 환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세대에 걸쳐서 제주 4・3은 역설적으로 인권교육의 소중함으로 귀결된다.


※ 한강범 님은 《선생님, 제주4·3이 뭐예요?》 저자이며,
제주 항일 독립운동가 발굴 및 서훈 추천위원회 발굴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