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1-30 15:19
[121호] 시선 하나 - 해외 육아전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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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무국
조회 : 6,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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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육아전쟁기 >.<
김가연
조카와 아들과 함께 한달 일정으로 필리핀에 날아왔다. 장차 이민을 준비 중인 오빠의 계획에 따라 큰조카의 영어 적응을 위함이었고, 흔치 않은 기회에 조카의 보호자를 자처해 살짝 숟가락을 얹었다. 출발 전 심각하게 고민하고 걱정했지만 순조롭게 이루어진 부모 미 동반 입국절차와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조카의 비행과는 다르게 이곳 생활 9일차에 접어든 지금은 좀 순탄하지만은 않다.
아이들은 오전에 아침식사가 끝나면 방학숙제로 나온 독서 감상문을 한 장 쓰고 거의 대부분 풀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거나 쇼핑몰에 가서 오락시간을 가지곤 한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잠깐 휴식하노라면 영어선생님이 오신다. 거기에서 첫 번째 스트레스가 오는데 수업하는 태도는 정말 가관이다. 옆집이모가 놀러온 것 마냥 편안함을 넘어서 예의 없게 굴기가 도를 넘는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방 한쪽 구석에서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을 뚫어져라 보고 있지만 참아 넘기기 힘든 몇몇 순간엔 나도 모르게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마냥 노려보게 된다.
하지만 선생님은 화내는 법이 없다. 거의 없는 것이 아니라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웃으며 “한번만 더 해보자” “이 개구쟁이~” “할 수 있어” 라고 말한다. 그리고 “괜찮니?” “무슨 일이야?” 라며 아이들의 기분과 상황, 상태를 세심하게 챙긴다. 돈을 받고 일로써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오빠에게 질문했더니 아니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화내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지~”라며 웃어넘긴단다.
두 번째로 크게 다가오는 스트레스는 사촌간의 관계이다. 한국에서는 가끔 보아서 그런가 서로 좋아서 집에 간다고만 하면 울며 매달리더니 여기서는 눈만 마주치면 싸움이 난다. 서로 으르렁 거리기가 때론 투견을 보는 듯하다. 새언니의 말에 따르면 한창 사춘기로 들어선 조카는 과격한 언행과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고 자존심 강한 아들은 맞으면 손해인줄 아는지 모르는지 겁도 없이 덤벼든다. 서로를 이기려고 으르렁 거리는 아동들을 잠잠히 달래며 인권적 환경에 관해, 존중에 관해, 함께 살아가는 것에 관해 떠들어 대며 나는 점점 더 엄격하고 난폭한 엄마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지마”, “서로 존중해줘!” “그렇게 함부로 할 거야?!” “그만해!” “실망이야!”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방법으로 서로를 존중하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아이들은 내게 실망한다. 이곳,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낮선 거리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무서운 부모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저 최소한의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기를, 그것만 해 준다면 다른 것들을 용인할 의향이 확고히 있다고, 그것만 이행해 준다면, 그것만이라도. (물론 그것이 진정 최소한인지, 부모의 최소한이 아이의 최대한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려 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은 주로 ‘태도’에 관한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일한 유산이기도 하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 삶을 다하는 태도, 해야만 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 역시 아직도 삶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것이 장차 아이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에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을 전해주고픈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고민하지 않고는 지나가기 힘든 대목이다.
그것에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고민이 되는가 보다.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데 즐겁지가 않다. 행복을 전해주고 싶은데 행복하지가 않다. 혼란과 무거운 공기만이 곁에 있다. 그렇게 혼란의 시간 속을 헤매다보면 나도 모르게 엄격의 칼날을 휘두르는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는 나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만다.
자식은 신이 이 세상 네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은 내 맘대로 안 되는 일투성이 인데 자식까지 보태주는 것 같아 곤란하기 짝이 없다. 이건 좀 시작부터 불공평한 게임이 아닌가 하는 억울함 마저 든다.
오늘도 선생님이 오기 직전까지 아이들과 신경전 중이었고 오늘 수업태도는 전과 다르지 않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관찰한다.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진 않지만 해야 하는 것은 계속 기다려서라도 답을 듣는다. 하기 싫다고 울거나 떼를 써도 멈추지 않는다. 단지 기다린다. “다시 해보자”라고 말한다. 다른 의미의 단호함을 배운다.
오늘도 나는 나의 최소한이 아이의 최대한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지 매일 밤 고민하고 있고, 이곳 생활은 앞으로 16일이 남았으며, 새로 배운 단호함을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신경전과 화해, 대화(라 쓰고 잔소리라 읽는다)를 시도하는, 이 낯설고 새롭지만 조금은 버거운 경험이 나를, 또 아이들을 더 키워 줄 것이라는 기대를 살짝 해 보아도 좋을까....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아~~ 난 또 불면중...
※ 김가연 님은 울산인권교육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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